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시작은 힘들었다. 전쟁통에 이북에서 휩쓸려 내려와 강원도 산구석 탄광촌에 정착한 그의 부모는 일자무식에 가난했고, 그저 탄광에서 탄을 캐어 대가족의 생계를 이을 뿐이었다. 그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첩첩산중에서 탄캐느니 도시로 나가 뭔가 해보겠다고들 했고, 그 식구들도 그렇게 모두 서울로 올라왔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맨몸으로 세상에 내던져진 그는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나와 거리를 헤매였다. 무식하고 성질 더러워서 가족으로부터도 냉대받던 그는 어찌어찌 작은 외국 공장에 취직했고, 거기서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가재도구 따위도 없었다. 혼수라고 아내가 해온 장롱은 단칸방에 다 들어가질 못해서 아래위를 톱으로 잘라내는 수모도 치러야 했다.
그나마도 다 털렸다. 연탄가스가 새어 나와 어린 아들은 죽을 뻔 했고, 식구가 늘면서 좀더 벌어보겠다고 회사를 옮긴 뒤 자리잡은 새 동네에선 도둑을 맞았다. 이번엔 세 식구가 다 수면가스를 맞았다. 다시 또 빈털터리, 식구들은 가난한 그를 대놓고 무시했고, 그는 이를 악물었다.
맺힌 한은 독기로 자라났다. 그는 평생 놀 줄을 몰랐다. '공돌이' 로 보낸 청춘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회의 벽을 느낀 그는, 옮긴 회사에서는 짬이 날때마다 공부에 매달렸다. 이틀에 한번 꼴로 밤샘 야근을 하는 직종이었지만, 그는 주말엔 앉은뱅이 책상 하나를 놓고 공부했다. 영어가 필요하다길래 영어에 매달렸고, 대학 학력이 필요하다기에 야간대학을 다녀 학위를 땄다. 기술자격이 필요하다길래 기술공부를 했고, 회사에서 애먼 데다 발령을 내자, 인생에 위기를 느끼고 자영업을 위한 자격 공부를 했다.
회사를 나와서 시작한 삶에서도 그는 놀거나 쉬는 법을 몰랐다. 동네에서 가게 얻어 자영업 하는 사람의 1년 휴일은 딱 여름휴가 4일이 전부였다. 그에게 일요일이란 그저 아침잠 두 시간 더자는 게 전부였다. 그의 출근시간은 6시반, 그시간에 아무도 없는 가게에 나가 그는 가게 앞 거리를 청소하고, 가게를 치웠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는 아홉 시가 넘어야 셔터 문을 내리는 것으로 마감되곤 했다.
아들이 공부깨나 하자 그 생활은 더욱 빠르게 돌았다. 못 배운게 한이 된 그에게 아마도 자식들의 학업은 인생에서 대단히 무거운 개념이었을 것이다. 아들의 고3시절 내내 그는 아들과 함께 출퇴근했다. 아들이 일어나는 새벽 5시에 같이 일어났고, 아들을 학교에 태워 보낸 뒤 가게로 나갔다. 물론 그래도 출근시간은 여전히 7시였다. 일이 끝나면 아들의 자율학습이 끝나는 10시반에 맞춰 아들의 학교 앞으로 갔다. 두 사람이 집에 오는 시간은 열한시. 그렇게 또 1년을 보냈다.
아들은 대학에 갔지만,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변해갔다. 성장의 단물을 빨아먹은 세대인 아들은 아버지와는 생각하는 바가 달랐다. 법대에 가서 법관이 되기를 바랐지만 거부했고, 외교관이나 공무원이 되기라도 바랐지만 거부했다. 아들은 이상한 소리를 했다. 책을 쓰겠다느니, 공부를 하겠다느니. 그럼 교수를 하라고 했다. 그것도 싫다고 했다. 아버지는 권력있는 자리에 아들이 서길 바랐고, 아들은 하필 그 권력을 거부했다. 그는 실망했고, 또 기뻐했다. 그의 뜻과 완전히 다르게 가는 아들의 길을 보며 입맛을 다셨지만, 한편으론 모든 가치가 무너지는 시대에 그 턱없는 가치와 도덕 같은 것에 매달리는 몇 안되는 고고한 존재가 되어버린 아들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뿌듯해 했다.
그는 계속 놀지 않았다. 아니 돌이켜보건대 그는 놀거나 쉬는 법을 아예 몰랐다. 어릴 때부터 뼛속까지 박힌 가난과 힘없음에 의한 강박은 평생 그를 짓눌렀다. 경제성장과 개발의 붐을 타고 그는 상당한 수준의 풍요에 다다랐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계속 일을 했고, 계속 누군가와 싸웠고, 계속 뭔가를 모으고자 했다. 여전히 그의 출근 시간은 7시였다. 세상이 주5일이 되어도 그는 7시였다.
그리고 아 이제 좀 쉬어볼까 하는 순간, 병마가 그를 덮쳤다. 그는 다시 출퇴근했다. 병원에 매일 아침 7시까지 나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1년. 가망없어 보이는 차도에도 불구하고 1년을 꼬박 다녔다. 그리고 그토록 가보고 싶어했던 손주의 돌잔치가 끝난 지 며칠 되지 않아 그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아들은 운다. 생전 그리 사이가 좋지도 않았고 다시금 머리로 되새겨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두 사람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운다. 안녕 아버지..안녕히...
Posted by redder